영업이 끝난 레스토랑. 언뜻 보면 컴컴한 어둠만이 깔려 있는 듯하지만, 레스토랑의 내부 깊숙이 있는 주방 쪽에선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주방과 가장 가까이 자리한 테이블에선 이곳의 요리사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길 하는 중이었다.
“흥베, 그래서 보컬은 어떻게 되었어?”
“말했잖아. 홍대 쪽에서 재즈에 어울릴 만한 목소리 가진 앤 별로 없다고. 너야말로 사장한테 얘기는 했냐?”
“어. 재즈 밴드라니까 별 말 않던데. 가끔 샹송도 껴주는 정도?”
“...꼴에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샹송 얘기를 꺼내셨구만.”
재흥의 비아냥을 끝으로 레스토랑은 또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현우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팔짱을 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가람이 입을 열었다.
“야 실은 내 친구가 관심이 있다던데.......”
그러자 현우와 재흥 둘 다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지금 무슨 일 하시는데?”
“보컬 학원 강사. 지금 있는 데는 세 달? 그 정도 됐는데. 그 일 한 지는 꽤 됐어. 2년 넘었을 걸.”
“다음에 한 번 데려와 봐. 음색 괜찮은지 한 번 보자.”
재흥이 현우를 슬쩍 보고, 가람에게 말했다.
“그래. 얘기해보지 뭐.”
가람이 흔쾌히 답했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인 현우의 고갯짓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레스토랑 Sabrina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Profiteroles au Chocolat
1. 요리하는 음악가, 음악 하는 요리사
토요일은 입시반 수업 밖에 없어 웬만하면 한가하다. 태현은 수업을 마치고 가람이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곧장 가는 중이었다.
‘그래봤자 식당에서 하는 밴드이면서 오디션이라니. 엄청 깐깐하네.’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태현은 그리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울 소재의 보컬 학원에서 강사를 하는 자신이 그 따위 오디션에 불합격할리 없다고도 굳게 믿었다. 태현은 자신감이 넘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네 시 쯤에 도착하니 가람의 말대로 레스토랑은 석식 준비로 인해 손님을 받고 있지 않았다. 태현이 박가람 요리사와 약속이 되어 있다고 말하자 여자 웨이터가 태현을 주방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꽤 으리으리하네. 박가, 이런 데서 일했구나.’
태현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고개만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곧 가람과, 두 남자가 가람의 등 뒤로 따라 나왔다. 간단히 소개를 해주려고 하는데 주방에서 가람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할 수 없이 세 사람만이 탈의실로 향했다.
셋은 의자를 가져와 원형으로 앉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눈 꼬리가 올라가 있고 볼이 빵빵하고 수염을 기른 이가 베이스의 김재흥, 코가 크고 어딘가 모르게 인상이 굳어 보이는 이가 건반의 김현우였다.
“가람이 말로는 2년 정도 보컬 강사를 하셨다는데. 그러면 실력이 좋으시겠어요.”
재흥이 태현을 보며 물었다.
“예.. 그 정도 일했죠. 실력은 뭐... 재즈를 주로 한다니 음색이 잘 맞아야 할 것 같은데요.”
“잘 아시는 거 같으니까 바로 노래 들어볼게요.”
현우는 태현을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말했다. 태현은 현우의 태도가 별로였지만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했다. 선곡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곡인 Fly me to the moon이었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In other words hold my hand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Fill my heart with song
And let me sing for ever more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In other words...
“아, 됐습니다.”
현우의 갑작스런 중단에 태현은 물론 재흥도 놀란 얼굴이었다.
“다른 곡을.. 부를까요?”
태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상상치도 못한 반응에 태현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진즉부터 현우의 무례함에 화가 난 상태였고 자기가 이런 취급을 받아 창피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괜히 중간에서 민망해진 재흥이 태현을 앉혔다. 현우는 그 제야 태현의 눈을 직시했다. 재흥은 작은 소리로 현우를 나무랐다. 그러나 현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해서 태현과 눈을 맞추어, 그 사이에 냉기만 흐를 뿐이었다.
“재즈로 선곡하신 걸 보니 말은 잘 전달받으신 것 같네요. 근데 제가 생각하던 음색하곤 좀 달라서요. 죄송합니다.”
자신이 무슨 음악을 처음 하는 햇병아리도 아닌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짜증이 치밀었다. 태현은 벌떡 일어나, 의자를 원래 있던 곳에 놓고 탈의실을 나가려는 현우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그 쪽이 건반을 얼마나 잘 두드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니 잘 친다 해도 나한테 이러는 건 무례한 거 같은데요. 얼마 들어보지도 않고, 음색 안 맞는다고 사람을 무시해요?”
현우는 천천히 뒤를 돌았고, 역시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재즈니까, 음색이 중요하단 건 그 쪽도 인정하고 들어간 부분입니다. 실력적인 면을 본다고 해도, 2년씩이나 강사짓을 어떻게 했을지 전 감이 안 잡히네요.”
“야, 김현우, 넌 무슨 말을 그렇.......”
“태현 씨가 원하면 다른 노랠 좀 더 들어보도록 할게요.”
어딘가 모르게 어눌한 거 같으면서도 차가운 말투. 그랬기에 태현은 더욱 더 화가 났다. 건반은 코로 칠 것 같이 생겨서는 제 실력은 보여주지도 않은 채 면전 박대라니. 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현우를 보다가 큰 보폭으로 현우에게 다가갔다.
“잘 먹고 잘 사세요.”
태현은 섬뜩할 정도로 눈을 곱게 휘어 보이며 말하곤 현우를 휙 지나쳐 탈의실을 나갔다. 문을 쾅 닫아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진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지가 뭔데 나를 무시해애! 이 김태현을 말이야.......”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 소주 한 병을 사서 집에 온 태현은 베란다에서 연신 소맥을 말아먹으며 주정을 해댔다.
‘내가 그 때 이후로 욕 안 먹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하고 생각하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가람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아 애태. 오디션 어땠어?
“어떠킨! 좆 같았찌!”
-헐? 뭐야. 술 마셨어?
“어. 나 완전 기분 안 좋아서 그냥 쭈욱 마셔찌.”
-크크크.. 너 혀 꼬이는 거 오랜만이네. 아, 그럼 괜히 전화했다.
“응? 나 혀 안 꼬여써.... 뭐가!”
-아, 아니. 너 월급 더 좋은 데 찾았잖아. 마침 우리 레스토랑 파티쉐 자리가 비어갖고.
가람에게 은근히 애교를 떨며 신세한탄을 하던 태현은 가람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됐어. 괜찮아.”
-응? 왜 그래. 오늘 일 때문에?
“아아 아냐 아냐. 아니 뭐 오늘 일도 그렇긴 하지. 아냐 괜찮아. 고맙다.”
-어, 어어.......
“박가, 나 이제 자려고. 끊을게.”
-으응. 잘 자라.
태현은 통화 종료 버튼도 누르지 않은 채 핸드폰을 집 안에 휙 던졌다. 여름이 한창 다가오는 중이라 8시가 넘은 시간에도 하늘은 푸르스름하다. 태현은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무릎을 모으고 그 위에 고개를 묻었다.
‘아직도.. 노래하는 거랑은 멀기만 한 건가.... 노래로 먹고 살고 싶은데 아직도 제과 쪽을..... 싫다 싫어.......’
알콜 기운이 올라서 그런지, 고개를 묻어 앞은 컴컴한데 몸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동....
..........
ㅇ동....
......
띵동-
태현은 감전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술 냄새가 나는 입안이 매우 썼다. 우울한 생각을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집 안으로 언제 어떻게 들어왔으며, 그만한 술을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잠이 든 건지.... 하는 생각에 또 벌떡 일어나 매트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지도 같은 것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주변에 오바이트 흔적도 없었다. 만족하며 다시 누우려고 하는데,
띵동. 초인종 소리가 다시 울렸다.
“아.. 나 저거 때문에 깬 거였지.”
태현은 고개를 한 쪽으로 돌려 자는 버릇이 있어서, 눌리고 흐트러진 왼쪽 머리를 툭툭 털며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여니 가출한 청소년처럼 짐을 이고 진 소년이 하나 서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누군지 기억이 안 났다.
“태현이 형......?”
저를 바라보는 커다랗고 동그란 눈과 제 이름을 말하는 목소리에 태현은 소년이 누군지 퍼뜩 떠올랐다.
“김...상우......?”
-2012.12.2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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