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유쫑




18.여행, 그 특별한






8월이 중순에 접어들며 휴가철을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은 막바지 여행을 떠났고 셰어하우스의 식구들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누가 먼저 가자는 의견을 냈는지는 불투명했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 다른 가족들이 떡밥을 물려는 물고기 떼처럼 달려들었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떠난 결과, 수학여행 때나 썼을 법한 커다란 방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래도 숙소 안에 작은 방 두 개가 딸려 있어서 아무렇게나 잡은 방 치고는 운이 좋았다.

짐을 풀고 땀을 식힌 것이 무색하게 식구들은 그 뒤 바로 밖으로 나왔다. 햇볕에 달궈진 모래사장은 맨발 한 번 내딛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타오는 뜨거어뚜겁다를 연발하면서 바다까지 맨발로 달려갔다.


“야-호!! 으하하하하하 나 완전 신나!”


황해와 접해 있는 칭다오가 고향이라던 타오는 오랜만에 바다를 봐서 그런지 굉장히 신나 있었다. 혼자 물장구를 치고 수영을 하며 놀던 타오가 식구들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니 백현과 찬열, 종대가 타오에게 물을 먹이자며 바다로 달려갔다. 종인도 경수를 데리고 그 뒤를 따랐고 준면도 웃으며 바닷가로 슬슬 걸어갔다. 루한과 민석은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펴고 앉았다.

타오를 저격한 다섯 사람은 타오의 눈과 코에서 눈물 콧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나올 때까지 짓궂은 장난을 쳐댔다. 타오가 짜고 알큰한 액체를 콧속과 목구멍으로 느끼고 그만 하라며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장난은 끝이 났다. 그리고 타오를 추스르기가 무섭게 이번엔 타오도 재미를 보아야 하지 않겠냐며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며 웃고 있던 준면을 끌어오기로 했다. 준면은 바닷가에서 기어 나오는 흡사 좀비 같은 여섯 남자를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 냅다 도망쳤지만 얼마 못가 백현에게 잡히고 말았다.


“어? 아냐아냐, 난 하지 마라. 야야 너네 오늘 고기 먹기 싫지?”

“벌써 사놓은 고긴데 무슨 걱정입니까. 자, 가자!”


물에 젖은 앞머리를 뒤로 시원하게 깐 백현이 말하자 준면을 에워싸고 있던 나머지 다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종대가 백현이 잡지 않은 준면의 왼팔을 잡았고 찬열과 종인이 다리를 한 쪽씩 잡아 올렸다. 경수는 손이 닿진 않았지만 준면의 머리 부분으로 팔을 뻗은 채, 타오는 시뻘건 눈으로 훌쩍이던 제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지 까르르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루한과 민석은 준면이 결국 바다로 패대기쳐지는 모습에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들도 이십 분 안에 전부 몰살되고 말았다.


“제일 큰형들한테 이러면 안 되지!”

“야, 나 카메라 있어!”


루한과 민석이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대보았지만 꿈쩍할 동생들이 아니었고, 거기에 준면까지 가담하니 막을 방도가 없었다.






한편 이들이 이렇게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훈과 이씽은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중이었다. 그들이 늦은 이유는 늦잠을 잤기도 춤 연습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회비도 다 냈으면서 이씽은 오늘 아침 갑자기 아프다며 가는 걸 꺼려했다. 셰어 하우스에 들어온 지 정확히 엿새째밖에 안 되어 하우스 메이트들과 여행을 간다는 게 아직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종대가 안 가고 남아서 간병해줄까 물어보는 바람에 이씽은 더욱 더 곤란해졌는데 마침 준비를 마친 세훈이 이씽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바닥에 짐가방을 휙 내려놓았다.


“형 가요.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세훈은 종대가 왜 그러냐 묻기도 알았다고 하기도 전에 팔을 잡아 무작정 일으켜 세웠다. 종대가 얼떨결에 방을 나가자 세훈은 이씽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꾀병인 거 알아요. 뭔 걱정이 그렇게 많아요? 나도 있고 종인이 형도 있는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씽을 흘끗 보는 세훈의 표정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걱정하는 사람의 표정이라곤 믿기 힘들었지만 이씽은 툴툴거리는 그 속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세훈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이었다.

이씽은 세훈의 그 점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동아리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세훈이 많이 도와줬던 것이다. 덕분에 이씽은 동아리 부원들과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상황이 좀 안정적이 되고 나서 세훈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는데 의외였던 것이, 세훈은 다른 동아리 사람들에겐 저에게 했듯이 크게 관심을 쓰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심한 듯 신경 쓰는 건 변함없이 같았지만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그랬기에 오늘도 이씽은 제 옆을 지키는 세훈의 노력을 알 수 있었고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 세훈을 따라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담감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저를 위하는 동생의 노력이 한없이 가상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식구들이 한바탕 물놀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몸까지 다 씻고 추욱 늘어져 있을 때서야 도착했다. 세훈이 준면에게 숙소 위치를 물어온 덕에 준면은 두 사람이 올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반색을 하며 둘을 반겼다. 물놀이를 마치고 지쳐서 한숨 자고 있던 종인과 경수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깼는데,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남아 있던 잠기운이 휙 달아났다.

야외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식구들은 두 팀으로 찢어졌다. 소화도 시킬 겸 저녁 바닷가를 걷는 산책팀과 피곤하다며 바로 방으로 들어간 노인팀이었다. 큰형님들인 민석, 루한, 준면을 빼곤 전부 바닷가로 다시 나간 셈이었다. 백현과 찬열은 저녁 바닷가를 거닐며 연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것인지 다른 식구들보다 앞서 걸었고, 그 둘과 멀리 떨어져 경수와 종인이, 그보다 조금 뒤에 종대와 세훈, 타오, 이씽이 따랐다.

경수와 종인은 딱히 둘이 떨어져 나와 걸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여섯 남자가 일렬횡대로 나란히 줄을 맞춰 행진하는 모양도 웃기고, 차라리 앞서 걷는 게 다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도 편할 것 같아 그리 서게 되었다. 두 사람은 뒤에서 들려오는 이씽과 타오의 어눌한 한국말인 제3의 언어를 들으며 웃거나 넷의 대화에 끼거나 했다. 그마저도 저만치 앞서 걷고 있던 백현과 찬열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끽하긴커녕 다시 서로를 바닷물에 밀어 넣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푸하하 웃으며 걷다가, 뒤쪽에 오던 네 사람이 중간에 멈춰선 것을 몰라 그들과도 멀어지게 되었지만.


주변에 함께 지내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안에선 더 친한 사람과 덜 친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저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에게 끌리는 이라도 어떨 때는 그 반대의 경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 셰어 하우스 안에서 종인과 경수가 그런 사이였다. 춤추는 것과 애완동물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이외엔 관심을 갖지 않는 종인, 자기 의견이 확실해서 차갑게 보일 때도 있지만 속으론 세심하게 신경 쓰는 경수. 하지만 일단 한 번 접점이 생기자 그들은 서로에게 점차 큰 관심을 가졌고 서로 다른 부분은 존중하고 동시에 흥미를 가지며 가까워졌다. 하우스 메이트들 역시 둘을 바늘과 실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고, 그것이 둘의 사이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뒤쳐진 네 명이 알아서 쫓아올 거라 생각하고 하염없이 걷고 있던 경수와 종인은, 어느 새 걸음을 멈추고 장난을 치던 백현과 찬열도 앞질러 식구들 모두와 전혀 다른 곳에 동떨어져 있게 되었다. 하늘과 바다는 저무는 해가 만들어내는 노란 빛 주홍 빛 노을로 그 경계가 허물어져 있었다. 어느 곳이 바다이고 어느 곳이 하늘인지 모를 카오스 같은 장관에 종인의 마음도 어지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김종이인! 도경수! 들어가자아!”


가볍게 장난을 치던 찬열과 백현에게 합류해 세훈과 이씽을 물에 빠뜨리는 걸로 뒤늦은 신고식을 치르고 나자 종대가 그만 돌아가 술을 마시자며 종인과 경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경수는 종대의 목청에 감탄하며 발을 뗐으나 종인은 계속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저 둘은 헤어지지 않아도 돼서 좋을까 아니면 헤어지지 못해 저주스러울까.


“종인아, 안 가?”


몇 걸음 가던 경수가 다시 돌아와 종인 옆에 섰다. 경계 없는 바다와 하늘의 심연으로 떨어지던 종인을 경수가 건져냈고, 때문에 종인의 물음은 허공에서 메아리치지도 않고 흩어지기만 했다. 종인은 어떤 것에도 해답을 얻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저 작은 사람과의 관계는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명명하지 못한 채 언제까지고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저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게 쳐두었던 가슴속의 벽이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어째서 그 굳었던 벽이 갈라지고 무너지고 있는 것인지. 그게 왜 하필이면 지금인지, 종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억에 영원히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 멀리 낙하하는 저녁에 모든 걸 맡기고만 싶었다.


“경수 형.”


종인의 깊은 시선을 따라 노을을 보고 있던 경수가 종인을 돌아보았다. 종인은 나른한 눈으로 경수의 커다란 눈을 내려다보았다. 단 한 번도 ‘예쁘다’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하지만 그저 보고 있는 모든 걸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이 커다랗고 깊은 경수의 눈엔 제 마음을 어지럽힌 하늘과 바다, 노을,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자신을 괴롭힌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음에도, 자신을 마주보고 있음에도, 그 눈 속엔 종인 자신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종인은 무너진 벽을 당장 다시 세울 수가 없어서 말해버리고 만다.


“고마워요.”

“뭐가?”

“……난 원래 내 일이 우선이고 내가 먼저인 사람이었어요.”


경수는 종인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그 커다란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보통 종인은 경수가 그렇게 바라보면 궁금증이 사라지도록 이야기를 덧붙이곤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해 경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라고. 종인은 그 말에 쓰게 웃었다. 그렇기 이기적이어서 자기도 결국은 이렇게 제 마음을 드러내고 마는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근데 형을 알고, 형을……, 형을 좋아하게 되면서 달라졌어요.”

“……어?”


경수의 눈이 더욱 더 커졌다. 되묻는 말은 짧았지만 거기엔 종인의 말을 거부하는 투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종인은 철벽 안에 지키고 있던 마음마저 그 벽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종인은 이제 더 이상 경수를 바라보지 못했다. 벌써부터 후들거리고 있는 다리로는 제게 돌아올 경멸의 말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의외로 경수는 종인이 예상했던 대로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았다. 경수는 종인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주홍빛으로 물든 모래사장과 그 위에 서 있는 제 발과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종인의 발을 훑었다. 그리고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종인을 올려다보았다.


“계속 숨기고 있던 거야? …언제부터였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종인은 놀란 눈으로 경수를 다시 돌아다보았다. 동시에 경수의 시선은 종인에게서 떨어져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종인도 더 이상 경수를 보지 못하고 파도 때문에 젖은 땅으로 눈을 돌렸다.


“형이 내 공연, 처음으로 보러 왔을 때.”

“…….”

“좋아한다고 알게 된 건……, 형한테 여자친구 생겼을 때.”


여자친구라곤 하지만 이미 전 여자친구가 된 사람이었다. 경수의 머릿속에선 빠르게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가 종인의 공연을 처음으로 보러 갔던 건 작년 봄, 저에게 마지막 여자친구가 생겼던 건 작년 가을. 반 년 정도의 텀이 있었다.


“그럼 끝까지 모르고 있지 그랬어.”


쏴아, 하고 몰려오는 파도소리에 경수의 혼잣말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니, 알아도 나한테만큼은 말하지 말았어야지. 제가 동성애자에 반감이 있었다는 건 종대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종인도 잘 알게 됐을 터였다. 그 전엔 그걸 주제로 말할 기회도 필요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종대 때문인지 예전처럼 심한 반감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을 말하는 종인의 무모함과, 어쩌면 특별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잘 해줬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수는 미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경수는 숙소와 반대 방향인 바닷길을 따라 빠르게 종인 옆을 벗어났다. 종인도 넓은 보폭으로 경수를 따라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잡는 순간 그 손목은 제 손에서 거칠게 빠져나갔다. 종인은 여전히 저를 향해 있지 않은 경수의 옆모습에 대고 말했다.


“형 들어가요. 내가 안 갈게요.”

“그냥 혼자 있고 싶다.”


역시 종인을 외면한 채 말하고 경수는 다시 걸음을 뗐다. 종인은 제 앞에 남은 경수의 잔상을 보다가, 경수가 남기고 간 발자국을 보다가, 마지막엔 끝없이 생기고 있는 발자국 끝의 더욱 작아진 뒷모습을 보았다. 당장 자기 자신이 받은 상처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그 뒷모습이 아파 보여 종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의 이기심이 경수를 상처 입힌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 때 누군가 종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종인이 스르르 고개를 돌리니 종대가 뛰어 왔는지 인상을 쓰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왜 안 와. 쟨 왜 가고. 경ㅅ…….”


종대가 경수를 향해 소리 지르려고 하니 종인이 재빨리 입을 막았다. 종대는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종인의 손이 금방 떼어져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그럴 새도 없이 종인이 종대에게 안겼다. 종대는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벌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종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차였어요. 경수 형한테. 형한테, 고백했거든요.”

“뭐? 아, 아니…….”


제 귀를 의심해서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에 종대는 말을 취소하듯이 버벅거렸다. 그 뒤, 말은 필요 없었다. 종대는 멍하니 있던 팔을 들어 올려 종인의 머리와 목을 감싸 안았다. 검은 머리는 조심스럽게 쓰다듬었고 고개를 숙이며 뼈가 튀어나온 뒷목부근은 가볍게 토닥이다가 더욱 더 꽉 안았다. 다가오는 여자들을 밀어내게 하고 생각만으로 그를 작아지게 하는 감정의 대상이 경수였다니. 종대는 제가 고백한 것도 아닌데 눈앞이 다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종인이 모르게 한숨을 삼키며 시선을 돌리니, 오늘따라 석양이 아름답게 보여 코끝이 시큰해졌다.


종인은 울지 않았다. 종대가 위로하려고 계속 안으려고 해도 괜찮다고 웃으며 떼어냈다. 종대는 그 모습을 보며 종인이 기대를 갖고 고백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표현하는 것에 종인은 의의를 뒀던 것이리라. 종대는 애초에 종인은 제가 지켜줘야 할 동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저보다도 어른스러운 그를 향해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종대는 숙소 앞까지 종인을 데려와 먼저 들여보냈다. 안에 들어가 술판을 벌이면 취해버려 알게 모르게 잠들 것 같았고 그러면 크리스에게 전화를 할 수 없기에 아예 먼저 해놓으려는 이유였다. 또 방금 알게 된 종인의 이야기를 하고도 싶었다.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누른 종대는 행여 경수가 돌아오다가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들을까 싶어서 슬슬 장소를 옮겼다. 통화를 하며 종대가 향한 곳은 숙소 건물 옆 작은 운동장이었다. 식구들과 저녁을 먹을 때만 해도 여기서 공을 차던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고, 해도 졌는데 가로등도 입구에 딸랑 하나 켜져 있고 입구를 뺀 나머지 부분은 전부 나무로 둘러싸여 으슥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쨌든 크리스와 통화하기엔 더없이 적합한 장소라 만족스럽게 운동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발을 들이자마자 뒷걸음질 치고 입구 옆 수풀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천적 앞에서 몸을 숨기는 야생동물처럼 신속히.


-종대,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로 크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종대는 크리스가 볼 수 없음에도 검지를 제 입 위에 갖다 대고 쉿, 소리를 냈다.


“헐- 대박…….”

-왜?

“저기, 루한 형이랑 민석이 형이랑……. 뽀……, 아니 키스하고 있어요…….”

-뭐어?


두 형들의 애정 행각, 그것도 농도 짙은 장면에 종대는 크리스의 반문에도 무의식중에 진짜, 진짜라고 기계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젠 먹잇감을 공격하기 위해 수풀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맹수처럼 눈에 힘을 주고 나뭇잎들 사이로 루한과 민석의 모습을 관찰했다. 종대가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딥키스를 나누고 있었지만 지금은 루한이 전체관람가의 순정만화처럼 달달하게 민석의 입과 코와 눈과 이마에 쪽쪽 소리를 내며 가볍게 뽀뽀를 하고 있었다. 그러곤 닳아 없어질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뭐라 뭐라 짧게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번엔 입술만 포갠 채 일시정지 화면처럼 가만히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온 여행에 너무 많은 걸 알게 된 종대는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 제 볼을 한 번 꼬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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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25

Posted by N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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