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혁명

     of the β, by the β, for the 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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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임무를 다한 구구는 창공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너른 하늘 아래, 무장한 베타와 오메가들이 드센 걸음으로 김 씨 저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인파 사이사이엔 베타를 뜻하는 β와 혁명(Revolution)의 R을 뒤집어, β가 거울을 보는 듯한 두 글자가 새겨진 깃발도 보였다. 양쪽의 병력은 10배가 넘게 차이가 났고, 수적으로 열세인 알파 쪽은 저택 안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현우 형.... 제발.......”

 

 로이는 저택 꼭대기에서 몰려오는 베타와 오메가 떼들을 지켜보다가,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듯 간절하게 말했다.

 

 “1층 궁수들 불화살 준비! ......발사!!!!”

 

 로이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장군이 로이의 귀가 떨어져 나가라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베타와 오메가들이 저택 거의 앞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장군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은 화살에 불을 붙여 높은 담 너머로 쏘아 올렸다.

 불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져, 알파들이 담 주변에 미리 부어놓은 기름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에 놀라 규성을 비롯한 선발대가 뒷걸음질 쳤다. 그 때 무리에서 지용이 튀어나왔다. 그가 지팡이를 천천히 휘두르며 주문을 외우니 지팡이 끝에서부터 물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이내 파도만큼 거대해지더니 거센 불을 덮어버렸다.

 

 이 모습을 본 로이와 장군은 경악하고 말았다. 마법사는 전부 국가의 관리를 받기 때문에 그들이 쓴 마법은 정보부에 자동으로 기록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법사가 이 전장에 뛰어들다니, 실로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지용 덕분에 사기를 충전한 베타오메가 군은 함성을 지르며 저택으로 달려들었다. 정문과 담을 사이에 두고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되었다.

 

 

 

 

 

 

 구구는 로이의 방 창문이 닫혀 있어 몇 번이고 부리만 부딪치다가 결국 방향을 틀어 태현의 방으로 갔다. 때마침 태현도 함성소리나 폭격소리 등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여러 소음에, 그 광경을 지켜보러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베란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창에 부리를 부딪는 구구 역시 소음 때문에 많이 놀란 듯 했다. 태현은 급히 창을 열고 구구를 들여보냈다. 구구는 정신없이 방 안을 몇 바퀴나 돌았고, 태현은 잠시 바깥을 바라다보았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나름대로 멋이 나던 광활한 정원은 나무를 다 뽑아버려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병사들과 무기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태현이 내뱉는 한숨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창을 닫고 커튼까지 친 뒤 흔들의자로 천천히 걸어와 앉았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던 구구도 태현을 따라 그의 손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겁을 먹어 바르르 떠는 몸짓이 태현의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동쪽 두 번째 세 번째! 사다리예요!!”

 

 창을 꼭꼭 닫았는데도,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데도 로이의 목소리만은 뚜렷하게 들려온다. 그건 태현에게 혼란을 안겨주었고 더 큰 고통이 되었다. 로이는 어제 오후에 태현을 찾아와 현우와 도망치라고 말했다. 태현이 거절했는데도 몇 분 뒤에 다시 찾아와선 그러면 오늘 6시쯤 지하 2층에 나 있는 비밀 수로로 가면 현우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꼭 가보라고 하던 그 자상함은, 태현과 현우를 진심으로 위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가고 지금은 저 밖에서 알파들 편에 써서 싸우고 있단 말인가.

 

 태현은 로이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렸다. 자신을 속이기 위한 함정은 아닐 테지만, 행여나 안 나갔는데 현우는 거기서 저를 기다리다가 잘못 되면 어찌 하나. 고민에 빠진 태현은 무의식중에 구구의 몸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구구가 누르지 말라는 듯 날개를 퍼덕이자 태현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얘가 혼자 새장에서 나왔을 리 없는데.......

 

 “어딜 갔다 온 거니...?”

 

 태현이 물었지만 알아들을 리 없는 구구는 태현의 손에 고개를 비비곤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 째 정문을 두고 씨름을 하고 있었으나, 구멍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저택 뒤쪽에 나 있는, 번화가를 흐르는 천과 연결된 수로를 통해 베타들이 침입한 것이다. 병사들이 지키고 있긴 했으나 확실히 정문 쪽에 병력을 가한지라 보다 허술한 건 맞았다. 게다가 지용이 처음에 마법을 부리곤 수로 쪽 팀에 합류해서 물을 이용해 공격해왔기에 알파 쪽은 속수무책이었다. 로이가 저택 위에서 날카롭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고 해도, 정문과 담이 워낙 높았고, 베타오메가 군들이 많았던지라 선발대의 마법사 한 명이 사라진 것 정도는 알 수 없었다.

 

 “준영이 형!!”

 

 저택 뒤쪽에서부터 베타오메가 군들이 하나 둘 나타나자 로이는 그 제야 수로가 함락됐음을 알아챘다. 로이는 아래에서 지휘를 하는 준영이 뒤쪽에서 공격을 당할까 큰 소리로 준영을 불렀다. 준영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여 알았다고 표시하곤 그가 맡은 군대를 데리고 침입한 베타와 오메가들을 공격했다.

 

 

 알파들의 정신이 흐트러진 틈에, 정문의 베타와 오메가 군들이 충차(衝車)에 일순 힘을 주었고 정문은 삐거덕거리며 열릴 뻔 했다. 로이는 깜짝 놀라 더 버티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기회를 놓칠 베타오메가 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몇 대 없는 귀한 대포를 연속으로 두 발 쏘았고 충격에 못 이긴 알파 군들은 문에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함성 소리와 함께 베타와 오메가들이 저택 안으로 침입했다.

 

 알파 쪽의 궁수들은 담을 넘어오는 이들을 막으랴 대문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막으랴 바빴다. 저택 대문 앞에서 지휘를 하던 로이의 아버지는 정문 쪽을 향해 대포 발사를 외쳤다. 물밀 듯 들어오던 베타와 오메가들은 일제히 방패를 들었으나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알파들의 대포 한 방에 정문 밖까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500명이 넘는 군사들은 그 무리를 넘어 계속해서 들어왔다. 로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있다가 전장에 뛰어들기 위해 내려가 버렸다.

 

 

 

 

 

 

 

 

 

 

 꼭대기에서 모습을 감춘 로이는 한참이 지나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말을 숲 속 깊은 곳에 묶어두고 저택 근처 수풀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현우는 로이가 직접 싸우러 갔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가 로이의 집을 드나들며 저택의 구조를 파악하고 혁명파에 보고했었기에 베타 군들은 일찍이 수로 쪽으로 나뉘어 들어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곳 말고도 작은 수로 하나가 더 있었으니, 바로 지하 2층과 연결되는 곳이었다. 성인 남자 한 명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입구라 현우 역시 그 존재를 늦게 알기도 했고, 침입 시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곳은 보고에 올리지 않았었는데 아주 잘 한 일이었다고 현우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 날, 태현을 데리고 무조건 도망치는 거였다. 혁명파가 제게 등을 돌리고 자신 역시 혁명파를 떠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간 날들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들이었다. 설사 지난 일들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온 일이라 할지라도, 태현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아니었다. 비록 숨어 다녀야만 했던 어제 하루는 일 년 같이 길었고, 혁명파에 남은 볼륨과 재흥, 가람이 걱정이 됐지만, 조금이라도 더 미련을 덜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어쩌면 현우에겐 더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현우는 수로를 두고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는 베타 그리고 알파 군들을 빙 둘러 목적지로 갔다. 저택 내부는 아직 무사한 듯 하니 서둘러 태현을 데리고 나와 쥐도 새도 모르게 이곳을 뜰 생각을 하며.

 

 

 

 

 

 

 

 

 

 

 12시, 3시, 6시, 9시마다 울리는 괘종시계는 오늘도 변함없이 6시를 알리며 저택 안에 울려 퍼졌다. 태현은 깔고 앉아 있던 방석을 빼내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잠든 구구를 살짝 내려놓았다. 바깥의 소음은 몇 시간 전보다 더 우람해져 있었지만 태현은 늘 그래왔듯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마음먹곤 방을 나섰다.

 

 그랬더니 실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사치품으로 치장하고, 여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을 뽐내던 알파 가문의 알파 혈족인 정실부인들과 규수들이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저택 구석구석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것이었다. 태현처럼 정실부인으로 알파 가문에 들어오는 남자 오메가들도 있었지만 씨받이 역할을 하기 위해 첩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상당 수였다. 귀한 집에서 귀하게만 자라 거칠고 힘든 일은 모르고, 더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들일 테니, 지금처럼 패닉에 빠져 있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마른 몸에 배만 불룩하게 나온 태현이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이 난리통에서도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꾀죄죄한 여인들은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는 태현을 보며 어떤 경외심을 느꼈다.

 

 

 

 

 각 층의 복도 끄트머리마다 입구가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은 주로 하인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태현은 하녀 두 명을 제외하곤 지하 2층까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무거운 몸으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태현은 꾹 참고 다섯 층을 내려갔다.

 

 지하 2층에 온 경험은 이 저택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안내를 받으면서 발만 디뎠던 게 전부였다. 주로 창고로 쓰인다는 지하 2층은 동굴을 연상시키듯 캄캄했고 습했다. 태현은 복도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는 램프들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길고 긴 복도를 계속 걷다보니 물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습한 곳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는 괜한 게 아니었다고, 태현은 생각했다. 마침내 태현이 내려온 계단과 정반대의 끝부분에 다다랐는지 여태까지 걸어온 복도와 수직을 이루는 수로가 나왔다. 램프를 살짝 내려 살펴보니 비밀 수로라고 할 만큼 수심 역시 얕았다. 수로 옆으론 사람이 다니라고 만든 것 같은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태현은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 번 조심조심 발을 내딛었다.

 

 5분 정도 걷자 바깥으로 이어지는지 경사가 완만한 계단이 나왔다. 태현이 계단에 발 하나를 올리는 순간, 바깥쪽에서 첨벙첨벙 물을 헤치고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램프를 더 꼭 움켜쥐고, 마침 태동이 느껴지는 자신의 배에 진정하라는 듯 다른 한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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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30

Posted by N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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