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혁명

     of the β, by the β, for the 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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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드가 천천히 걷어지고 나타난 건 현우의 얼굴이었다.

 

 둘이서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으나 대광은 현우를 알고 있었다. 나라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옛날에 규성이 소년이었던 현우를 자신의 성으로 데려온 적이 있던 것이다. 그것도 베타들을 등에 질 장래가 창창한 아이라면서. 그 때의 앳된 모습은 사라져 있었지만 결의에 찬 변함없는 눈빛에 대광은 현우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눈빛만큼 단단한 목소리로 현우가 말했다.

 

 

 

 

 

 

 

 

 

 

 나룻목 근처의 술집은 이곳을 떠나기도 이곳에 들어오기도 하는 나그네들이 저마다의 회포를 푸느라 시끌벅적했다. 대광이 현우를 만류하고 직접 맥주를 가지러 가는 사이 현우는 태현에게 듣고 온 말을 되뇌고 있었다.

 

 “우성오메가? 말도 안 돼. 내가 왜?”

 

 “젊은 예술가 양반, 나도 시간이 얼마 없어요. 당신 친구들이 도시를 봉쇄하기 전에 떠나야 하니까.”

 

 어느 새 돌아온 대광은 한 컵 가득 넘치는 두 개의 맥주잔을 식탁에 놓으며 자신의 앞에 앉았다. 현우는 사과를 하고 말을 꺼내려 했으나 막상 이야길 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대광은 맥주를 마시며 어리벙벙하는 현우를 보고 웃었다.

 

 “아마, 내 부인에 대해 물어보러 온 거겠죠?”

 “아....... 네.......”

 

 단단한 눈빛은 어디가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처럼 현우가 휘둥그런 눈을 하고 대광을 보았다.

 

 반년도 넘은 지난 어느 날, 규성이 대광에게 찾아와 유곽의 우성오메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대광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침착하게 말했으나 ‘우성오메가’란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규성이 돌아간 뒤 그는 김 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그 ‘우성오메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퀸 에이티, 본명은 김태현. 유력한 알파들의 청혼을 몇 번이고 거절했으면서 로이에겐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었다고 했다. 그 내막까지 파고들진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 남편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정보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우를 맞닥뜨리고 난 지금. 규성이 자신을 몇 번이고 찾아오며 남겼던 말들을 차곡차곡 포개어 보니, 현우가 제 정인이 우성오메가란 사실, 때문에 그가 위험하단 사실을 깨달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현우는 우성오메가인 부인을 두고 있던 자신을 찾았을 터다. 정확히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는 현우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야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정보를 원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태현이...., 그 애가..., 왜..., 어떻게 우성오메가라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죠?”

 “...그건 그렇게 여기던 규성 씨 쪽에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 아니, 그건.......”

 

 당황하는 현우에 대광이 넌지시 웃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놀리려던 건 아닙니다. 어쨌든 ‘그’ 존재에 대해 더 잘 아는 건 제가 맞으니까요.”

 

 대광은 그렇게 운을 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부인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인종을 떠나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죠....... 한편 난 알파 집안에서 알파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지만, 어린 마음에 친구들을 따라 유곽에 발을 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거기에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긴 구애 끝에 우린 마침내 결혼을 했어요. 행복한 생활이었습니다....... 결혼하고 1년 후에 우리에게도 어렵게 아이가 들어섰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어요. 바보 같은 난 당시엔 그게 그저 힘들고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고 일에만 매달려 있었구요.... 열 달 뒤, 마침내 진통이 시작됐고 난 그 제서야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녀가 우성오메가였던 사실을.......

 우성오메가는 히트 사이클이 아니어도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페로몬을 내뿜죠. 그게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사랑받는 이유구요. 하지만 오메가란 종족의 특성 상, 옛날부터 천시되어 왔고, 우성오메가의 페로몬이 가진 강력한 힘이 무서워진 기득권층은 역사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렸고, 그 말은 꺼내서도 안 될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성오메가에 대해 모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우성오메가는 대신, 대를 잇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아기를 갖기도 힘들고, 가진다 해도 보통은 둘 다 죽거나 산모가 죽거나. 둘 다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요. 제 부인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한 거였구요. 그리고 그렇게.... 전 한날한시에 소중한 사람 둘을 동시에 잃었습니다.......”

 

 “.......”

 

 십 년도 더 된 일인데도 그 때의 일을 말하는 대광의 얼굴은 당시의 아픔이 다 드러나는 듯했다. 현우는 애도의 의미에서 잠시 침묵을 지켰으나 마음이 급해 새로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성오메가는 자신이 우성오메가란 사실을 알 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태현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임신을 쉽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태현이 ‘진짜’ 우성오메가라면, 지금 아기를 갖고 있단 사실 자체도 위험한 것이 아닌가. 현우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부인 분은 어떻게 아신 거죠? 자신이 우성오메가란 걸.”

 “오메가가 첫 히트 사이클을 경험하며 알게 되듯 우성오메가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전제될 지식이 두 가지 있습니다.”

 

 대광은 손을 잔에서 떼고 손가락 두 개를 펴 V자를 만들어 보였다.

 

 “첫 번째는 우성오메가라는 존재 그 자체. 그걸 모르는데 본인이 긴지 아닌지는 알 수 없겠죠?”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두 번째는 히트 사이클에 관계를 가져도 아기가 잘 생기지 않는다, 물론 피임약 없이도요. 이게 오메가들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에요. 보통은 열에 아홉, 히트 사이클 땐 임신이 되니까.”

 

 그 말에 현우에게 태현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내가 왜? 난 임신도 한 번에 됐단 말야.”

 

 현우는 드디어, 묵은 체증이 뚫리듯 숨통이 트였다. 태현이 우성오메가인지의 여부는 대광도 모르고 있었으나, 안심한 듯 환하게 웃는 현우의 얼굴을 보니 태현이 그저 보통의 오메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타이밍이 좋았군요. 규성 씨는 제게 수십 번을 찾아왔어도 원하는 걸 얻지 못했지만, 그쪽은 단 번에 얻었으니.”

 “아뇨....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현우는 헤벌쭉한 표정을 차마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이 현우의 고마운 마음을 더 잘 드러내주었다.

 

 이 남자는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오랜만에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는 대광이었지만 그는 떠나는 이의 발걸음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까지 대광을 배웅한 현우는, 술집 문이 닫히고 나자 온 몸에 긴장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허리를 굽혀 머리를 식탁에 뉘이며 현우는 중얼거렸다. 얼마나 다행인지 눈물이 다 날 것만 같았다. 손님들은 젊은 양반이 맛이 갔다며 비웃기도 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숙제는, 피바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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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5

Posted by N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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