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유쫑




12.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마세요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는 표현은 대체 누가 쓴 것인지. 순 거짓말이었다. 장마 첫날부터 험하게 빗줄기를 쏟아 붓는 하늘 때문에 집에 들어오는 이는 너나 할 것 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종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걸으며 빗물이 튀는 다리는 어쩔 수 없다지만,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우산을 썼는데도 등과 어깨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으어, 다 젖었다.”

“1층 화장실에서 발 닦고 들어가래.”


소파에 앉아 있던 루한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줄곧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종대에게 그리 일렀다. 준면이 집에 들어오는 애들한테 그렇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까닭이었다-몹시 피곤한데도 준면의 부탁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루한이었기에 반강제나 다름없었지만. 종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욕실로 들어가 더러운 물이 튀긴 발과 다리를 씻었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온 건데도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노랫소리가 섞여 들리자 거실에 있던 루한, 민석, 세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종대를 끝으로 식구들이 전부 집에 들어오게 되자, 힘들게 졸음을 참아내던 루한은 임무를 다했으니 이만 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나온 종대는 루한의 뒷모습에 잘 자라는 말을 던지고 세훈 옆에 와 앉았다. 종대가 수건으로 발등과 다리를 닦으며 무슨 영화냐고 물으니 세훈이 간단히 답했다. 그러다가 눈은 TV 화면에 고정한 채 종대에게 물었다.


“종대 형, 내일 공연 어디에요?”

“응? 홍대 M홀. 왜? 오게? 너 토요일이라 연습 있잖아.”

“네. 그냥 물어본 거죠. 물어보지도 못하나.”


종대가 기대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지만 세훈은 찬물을 끼얹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종대는 오리 주둥이를 하곤 우이쒸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 다리를 닦았던 수건을 세훈의 머리 위에 던졌다.


“아 뭐예요! 더럽잖아요!”

“벌이야. 형님을 농락한 벌.”


이미 저만치 멀리 달아난 종대는 저를 향해 눈을 치뜨는 세훈에게 방실방실 웃으며 말했다. 사지를 휘적거리며 수건을 치운 세훈은 팔자주름이 지도록 입가를 아래로 당겨 다물었다. 어쨌든 그냥 물어본 거라니 종대도 세훈이 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네 밴드가 차례로 나오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던 종대는 관객들 사이에서 세훈을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세훈 옆엔 종인도 함께 있었다. 관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기도 했지만 두 동생이 장신이라 불쑥 튀어나온 두 얼굴은 쉽게 눈에 띄었다.


“와! 나 보러 온 거야? 어젠 그렇게 튕기더니 오늘은 형을 이렇게 감동시키고.”

“저희 밴드 공연 끝나고 있는 댄스파티 때문에 온 건데요.”


종대가 또 오리주둥이를 만들며 씨씨거리니 얄밉게 말한 세훈이 종인의 어깨를 잡으며 웃었다. 세훈과 종인은 오늘, 그들이 가입한 댄스 동아리가 댄스파티에서 깜짝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라 온 것이었다. 하지만 종대의 공연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다른 크루들보다 서두른 점도 있었으니 종대에게 말한 대로 댄스파티 때문에만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종대를 보러 온 거라 생색내지 않은 건 공연 보러 온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몇 날 며칠 열과 성의를 다해 기다린 것도 아니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래도 형 공연 봐서 색다르긴 했어요. 노래 완전 잘 하던데요?”

“맞아. 다른 사람 같던데.”


이번엔 종인이 세훈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 위에 턱을 놓인 채 맞장구쳤다. 세훈과 종인은 종대가 당연히 환호성이라도 지르며 좋아할 줄 알았는데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워 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아니라며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겸손한 말까지. 오히려 못하는 일엔 자신 있게 나서며 우쭐해 하지만 본인이 진심으로 잘 하고 싶어 하는 일엔 겸손한 종대를 보며 세훈과 종인은 오늘 형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알고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바에 모여들어 가볍게 한 잔 걸치고 있던 중, 디제이의 현란한 손놀림과 함께 댄스파티가 시작되었다. 모두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데 어느 누군가와 손으로 싸인을 주고받은 세훈과 종인이 종대를 바에 남겨두고 인파 속으로 숨어들었다. 종대의 시선이 두 동생을 쫓았지만 둘이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도 했고 반짝이는 조명도 정신없어 금방 놓쳐버리고 말았다.

자기도 가볍게 몸이나 풀 겸 맥주잔을 내려놓고 자리를 뜨려는데 함성과 박수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플로어 정중앙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뒤로 물러났다. 종대 역시 사람들에게 밀려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혹시 세훈과 종인이 준비했다는 퍼포먼스가 시작된 건가 싶어 목을 쭉 빼고 플로어 중앙을 보았지만, 거기엔 남자가 아닌 여자가 파워풀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어쨌든 클럽의 모든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호응하고 있는 분위기라 종대도 가볍게 리듬을 타며 호응을 하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종인이 플로어 중앙으로 훅 튀어나왔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빠르게 턴을 돌며 여자에게 다가갔고 그 앞에서 한쪽 다리를 쭉 찢어 앉는 동시에 조명이 꺼졌다. 종대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이윽고 둥둥둥 울리는 강한 비트에 이어 조명이 켜졌고 종인이 본격적으로 여자를 도발하며 춤을 췄다. 종인은 남자다운 힘이 실린 동작 중간중간에 부드러운 곡선이 숨은 동작도 섞어서 출 줄 알았고 무엇보다 연기력이 뛰어나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종대는 종인이 왜 아르바이트를 갈 때와 춤 연습을 갈 때가 아니면 늘 죽은 듯이 잠을 자는지 종인의 춤을 보며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저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는데 평상시에 안 피곤해 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았다.

음악은 끝나가는데 종인과 여자의 댄스 배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이 몸을 일직선으로 놓고 서서 고개만 서로를 향한 채 애매하게 배틀이 끝났는데, 그 때 스테이지의 조명이 눈부시게 들어오며 여섯 남녀의 실루엣이 비쳤다. 종인이 있던 플로어의 조명이 꺼지며 스테이지의 조명도 알맞게 조정되었고 새로운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 무리의 중심에 세훈이 있었다. 종인이 춤을 갖고 노는 느낌이라면 세훈은 그 자체가 춤이 된 느낌이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살아 있었고 손끝 발끝 하나까지 섬세한 표현력이 관객의 감탄을 자아냈다. 또한 다른 크루들이 중앙에 설 때는 그들을 돋보이게 동작을 줄이면서도 제 느낌을 잃지 않는 힘이 있었다.

세훈의 무리는 스테이지를 박차고 내려와 플로어 중앙으로 오더니 종인과 여자 댄서를 밀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남녀 크루들과 각각 배틀을 벌이던 종인과 여자 댄서는, 종인이 쓰고 있던 모자를 여자 댄서에게 넘겨줌으로써 화해를 했고 함께 세훈의 무리를 상대했다. 그렇게 종인과 여자 댄서의 화해를 기점으로 세훈 무리도 두 사람을 인정하는 기색을 보였다. 여섯 명의 팀은 두 남녀의 춤을, 두 남녀는 여섯 무리의 춤을 따라하고 각각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두 세력이 화해를 한다는 내용으로 퍼포먼스는 끝났다.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와 함성이 클럽을 메웠다.


무대를 멋지게 마친 세훈과 종인은 종대가 있던 바로 돌아왔다. 종대는 땀을 장맛비처럼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동생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러자 세훈과 종인은 멋쩍게 웃었다. 둘이 바텐더가 서비스로 건넨 얼음물을 들이키는 사이, 종대는 제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종인과 세훈의 춤을 기억나는 대로 따라 춰 보기도 했다. 그 모양새가 퍽 웃겨 둘 다 웃음을 터뜨렸고 세훈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기까지 했다.

세훈은 대충 숨을 고르자 다시 플로어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춤을 췄다. 종인은 더 쉴 모양인지 스툴까지 꺼내다 앉았다. 종대도 종인 옆에 따라 앉았고 세훈이 없을 때 한 턱 쏘겠다며 종인에게 마실 걸 고르게 했다. 종인이 진 토닉을 고르자 종대는 바텐더에게 진 토닉 두 잔으로 주문을 넣었다.


“이야, 종인아 너 진짜 잘 추더라. 내가 춤만 잘 추는 사람은 봤어도 춤추면서 연기하는 사람은 첨 봤다. 이런 애가 친동생이었음 얼마나 좋아. 어? 김종인, 김종대. 이름도 두 글자가 같애요. 종 자 돌림하면 딱이겠다. 암튼 이렇게 춤 잘 추는 동생이 있으니까 얼마나 기분 좋아. 아 진짜 완전 반하겠던데.”


게이에게 듣기엔 조금 위험한 발언일지도 몰랐지만 종인은 피시식 웃기만 했다. 진 토닉 두 잔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떠들었던 종대는 나오고 나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칭찬하는 건 물론이요 언제부터 춤을 췄냐, 어떡해야 그런 그루브가 나오냐 등의 질문도 이어졌다. 간혹 여자들이 다가와 종인에게 춤 정말 멋있었다고 말을 걸어오면 종인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어떤 여자는 종인의 옆을 쉽게 떠나지 못하며 자꾸 말을 걸려고 해서 종인에게 관심이 있는 게 빤히 보였지만 종인은 그녀에게도 적당히 대꾸할 뿐이었다. 결국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바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김 동생, 철벽남이네 철벽남.”


종인은 들었던 잔을 입에 대지 않고 그냥 내려놓으며 종대를 보았다.


“저 여자 너한테 관심 있던 거잖아.”

“나도 알아요.”

“진짜? 근데 왜 거절했어.”


종인은 눈을 위로 굴리며 종대의 시선을 피했고 조금 전 마시지 못한 한 모금을 들이켰다.


“왜? 좋아하는 사람 있어?”


종대는 설마설마하며 망설이지도 않고 그저 대화의 흐름 상 가볍게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잔을 내려놓은 종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워낙 인상이 강하고 말투도 성격도 다정한 편은 아니고, 춤출 때도 관객을 사로잡는 걸 넘어 잡아먹을 듯한 기운을 내뿜던 종인이다. 종대는 소녀처럼 수줍어하는 것 같은 종인의 모습에, 기억 저편에 있던, 짱아가 예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종구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것 앞에선 약해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부끄러워 해. 뭐야, 혹시 날 몰래 좋아하고 있던 거 아냐?”

“아, 아니에요!”


누가 봐도 농담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종대의 말에 종인은 죽자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정색을 하며 종대에게 소리치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기운 없이 말했다.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말만으로도 풀이 죽는 종인의 모습에 종대는 종인이 짝사랑을 하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 위인이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도 함께 말이다.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람들로 북적이는 플로어를 보니 세훈은 여자들과 잘 어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종인도 저 정도만큼은 가볍게 즐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민들레구나.”


종대는 굳이 세훈 얘기는 하지 않았다. 꼭 세훈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종인 그 본인만으로 ‘의외’라는 말은 쉽게 적용될 수 있었으므로. 진 토닉을 한 입 머금은 종대는, 시끄러운 클럽 음악 속에서도 노래하는 듯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널 주제로 곡을 써도 괜찮겠다. 가사 내용은 외강내유로.”










종대는 그 날, 겉만 강하지 속은 여린 제 김종 동생을 잘 보살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쉽게도 그 이후론 종인의 여린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종인의 속마음이 형인 제게 의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아서 종인에게 말을 더 자주 걸었고 장난도 더 많이 치곤했다. 그런데 며칠 안 가 종대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할지 뒤통수를 맞았다고 할지, 하여튼 종인에게 된통 당하고야 말았다.

저녁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오니 퇴근한 직장인 세 명이 거실과 부엌 사이에서 요상한 자세로 춤을 추고 있었다. 몸과 팔 다리가 따로 노는 것이 춤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부엌에 있는 나머지 가족들도 춤추는 세 사람을 보며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종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 이야- 저기 오늘의 주인공이 내려오시네!”


어안이 벙벙한 종대를 본 백현이 소리쳤다. 그러자 일동 박수를 치며 종대를 맞이했다. 뭐예요, 하고 종대가 물었지만 식구들은 웃음만 빵빵 터뜨리느라 답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종대야, 엉덩이는 이렇게 털면 되는 거야?”


민석이 부엌으로 들어서는 종대를 붙잡아 두 팔은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곤 엉덩이는 뒤로 쑥 내민 채로 흔들어 보였다. 식구들은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됐고 루한은 얼굴이 구겨질 정도로 웃으면서 민석을 껴안아 말렸다. 그리고 민석의 몸놀림이 낯설지 않았던 종대는 계단을 내려오면서부터 보았던 민석과 찬열, 백현의 춤 아닌 춤이 저의 춤을 따라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백현과 찬열은 놀란 종대의 얼굴을 읽고 또 다른 춤을 이어서 추었다.


“아 왜에! 조옴! 하지 말라고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종대가 백현과 찬열을 쫓아다니니 둘은 도망치면서도 종대의 춤을 따라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종대는 열심히 징징거리며 따라다니다가 식탁에 나란히 앉아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고 있는 두 동생을 보았다. 그러자 며칠 전 클럽에서 자신이 춤추는 걸 찍던 세훈이 떠올랐다.


“오세훈 네가 그랬지! 너 이리와. 이리오라고오!”

“나 아니에요!”

“그럼 누군데!?”


종대가 백현과 찬열을 두고 세훈을 잡으려 뛰어가니 세훈이 재빨리 일어나 거실로 달아났다. 세훈은 그곳에서 종대의 옆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세훈과 함께 도망치지 않고 무방비하게 앉아 있는 종인이 있었다.


“김종인 너어…….”

“하, 하하…….”


촬영은 오세훈에 배포는 김종인이란 말인가. 대견하고 사랑스럽던 동생들이 원수처럼 느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종대가 팔다리를 흔들며 투정을 부리니 백현은 역시 소울이 살아있다며 비아냥거렸다. 그 틈을 타 종인도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종인 앞에 앉아 있던 경수가 종대에게 일러바치는 까닭에 꼼짝없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아, 아뇨 형, 나 혼자 보고 있는데 백현이 형 찬열이 형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막 본 거라니까? 종인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종인의 등에 매달려 목을 조르는 종대는 선처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경수 옆에서 조용히 웃기만 하던 준면이 밥상 앞에서 먼지 날리지 말자고 한 소리 한 후에야 소란은 잠잠해졌다. 종대는 씩씩대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뭘 먹은 것 같지도 않고 부글부글 끓기만 하는 속으로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눌렀다.


“아, 형!!”


종대가 크리스의 여보세요, 소리가 들려오기도 전에 외쳤다. 이 정도로 흥분한 종대는 오랜만이라 크리스는 종대가 댄싱머신으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조용히 웃었다. 크게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랬다간 전화가 당장 끊길지도 몰랐으니까.


“진짜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요? 특히 김종인. 어오- 그 여린 모습에 속았지 뭐예요. 아냐. 여리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다.”

-왜, 우리 종대가 춤을 얼마나 잘 추는데.

“그쵸! 역시 형밖에 없다니까. 그리고 민석이 형이랑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따라한 것도 있다구요. 내가 췄으면 그렇게 안 웃겼을 걸.”


그건 아마 사실보단 소망에 가까운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다시 한 번 웃음을 참으며 수긍해주었고, 종대도 보는 이 없지만 엄지를 치켜세우며 형도 춤 짱 잘 춘다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안타깝게도 크리스가 춤을 잘 춘다는 것도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었다. 크리스 역시 춤을 춘다기보단 흥을 몸으로 승화시켜 흐느적거리는 것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종대도 크리스도 서로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보단 웃음이 먼저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지금도 서로의 몸짓을 떠올리며 키득거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애인이 최고라고 말하는 건, 그리움 섞인 사랑 때문. 이렇게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종대는 어느 새 속이 편안해졌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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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08

Posted by N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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