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α/PAC

[현태/준로] 프로피트롤 오 쇼콜라 19

Neese 2015. 7. 9. 23:47

 오늘 역시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네 남자가 탈의실로 들어왔다. 재흥과 가람, 태현은 다음 주엔 무슨 곡을 할까 떠들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사이 잠시 정적이 흘렀고 미리 옷을 갈아입은 현우가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한테 할 말이 있어.”

 

 현우가 무슨 말을 할지 알던 태현이 현우를 보았다. 현우는 태현과 잠시 눈을 마주치고, 옷을 다 입어 뭐냐고 묻는 재흥과 가람을 보았다.

 

 “나.. 여기 그만 두려고.”

 “어?”

 

 재흥이 되물었고 가람은 놀란 얼굴로 아무 말도 못했다.

 

 

 

 

 

 

 

 

 

 

 Profiteroles Au Chocolat

    19.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나요?

 

 

 

 

 

 

 현우에게 이야기를 들은 재흥과 가람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현우는 재흥을, 태현은 가람을 보며 얘가 이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그럼 애태 너도 그만 둔다는 거야?”

 “뭐.. 그렇겠지..?”

 “아냐. 근데 태현인 꼭 당장 그만 안 둬도 돼. 이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니가 하고 싶은 일인데 우리가 말릴 수는 없지.”

 

 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재흥이 말했다.

 

 “공연은 어떻게.......”

 “공연은 계속.......”

 

 재흥과 현우가 동시에 말했다. 재흥이 어떻게 할 거냐는 식으로 현우를 보았다.

 

 “계속 하려고. 사장이 괜찮다고 한다면.......”

 “어.. 나도.”

 

 태현이 살짝 손을 들며 말했다. 이제야 모처럼 음악 한다는 기분도 들고, 마음도 잘 맞는 녀석들이라 앞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침묵 속에서 네 남자는 그리 생각했다. 비록 현우는 자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긴 해도 이들이 좋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준영은 요즘 친구 은아와 연락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바로 연애 상담 때문. 그것도 은아의 상담이 아닌, 마음 안 주기로 소문난 정준영의 상담이었다.

 요전부터 밴드 녀석들이 이상한 말을 자주 하긴 했었다. 너 연애하냐. 요즘 보면 첫사랑 할 때 이후 처음으로 누구 좋아하는 거 같다. 등등.

 문제는 그 모든 대상이 상우라는 사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우에게 대놓고 내가 너 좋아하냐고도 물었었지만 상우의 반응이 하도 시큰둥해서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었다. 그런데도 상우가 자러 온 날은 그 애를 왜 그냥 보내지 못한 건지.......

 

 -정준영!

 

 핸드폰 너머의 은아가 소리쳤다.

 

 “어, 어어...... 미안.”

 -전화해놓고 정신 팔고 있으면 어떡해. 상우 나올 때 된 거야?

 “어.. 응. 미안 끊어야겠다 이따 다시 연락해.”

 -응 상우한테 잘 해줘!

 “네네 알겠습니당.”

 

 준영이 통화가 꺼진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자 종례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루루 튀어나왔다. 상우는 늘 그렇듯 행렬의 마지막쯤에 모습을 보였다.

 

 “아 너네 담임 진짜 별로야. 맨날 꼴찌야 맨날.”

 “크크. 미안해요. 애들이 워낙 다 사고뭉치라.”

 

 그래도 상우가 그 반 애들 중에선 빨리 나온 편인지 그 뒤로 수십 명의 아이들이 더 나왔다. 몇 명이 상우에게 내일 보자고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도 슬슬 발걸음을 옮겼다.

 

 “형 우리 반 여자애들이 형 보니까 막 소개시켜달래요.”

 “그럼 너랑 동갑 아냐?”

 “그쵸.”

 “에이... 애들한텐 관심 없다아.”

 

 그러자 상우가 입을 앙다문다. 그걸 옆으로 몰래 내려다본 준영이 손을 슬쩍 상우의 엉덩이로 갖다 댄다.

 

 “어어엄마야!!”

 

 상우가 깜짝 놀라 물고기처럼 펄쩍 뛴다. 그에 준영은 웃으며 상우가 도망 못 가도록 팔로 어깨를 두른다.

 

 “There is no rule that has no exception.”

 

 상우는 말없이 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고개를 숙였다. 어떨 땐 자기보다 똘끼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땐 시원시원한 성격인 태현과 다른 상우다.

 

 ‘뭐..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도 상관없겠지. 꼭 고백 같은 걸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상우의 볼이 빨개졌을 거라 예상하며, 준영은 그리 생각했다. 홍대에서의 세 번째 버스킹을 앞둔 둘은 연습을 하러 오늘도 준영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직원 점심시간. 현우는 밥을 먹지 않고 탈의실에 들어가 봉투 하나를 챙기고 사장실로 갔다. 약속이 있는지 사장은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오 김 셰프님. 웬일이에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저기.. 드릴 말씀이 있어서.”

 “아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나가봐야 해서요.”

 “오래 안 걸립니다.”

 

 현우는 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들었다. 세로로 ‘사직서’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게 뭡니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일을 그만 두고 싶습니다.”

 

 아니 한글도 못 읽어? 사직서라고 써있잖아. 현우가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말한다. 사장은 천천히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흰 봉투를 주시했다.

 

 “대체 마음에 안 드는 게 뭡니까? 김 셰프 뜻대로 일요일마다 공연도 하게 해줬잖아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일.......”

 “그래 이렇게 되니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희도 김 셰프 데리고 있기 힘듭니다. 실력은 좋은데 괴팍한 요리사. 김 셰프 이 바닥에서 그렇게 소문 나 있는 거 알죠?”

 “.......”

 

 그건 일개 사장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어느 새 현우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뭐 일단 이건 받아두고. 자세한 얘긴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합시다.”

 

 사장은 사직서를 책상 서랍에 넣고 현우를 지나 사장실을 먼저 나갔다.

 

 “아.. 공연이고 뭐고.......”

 

 다시 얘기하자고는 했지만 결과는 뻔하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사장은 이 일을 발판삼아 성격 좋은 부주방장 대광을 승진시킬 거다. 그만 두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그래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감 뒤에 현우는 꾹 참고 사장을 다시 만나러 갔다. 이렇게 그만 두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공연 얘기는 해보려고 말이다.

 

 “아니오. 그건 곤란하겠는데요. 애초에 여긴 라이브 카페가 아니니까요.”

 

 사장은 단칼에 거절했고, 현우의 예상대로 대광을 주방장 자리에 앉혔다. 거만하고 경솔한 태도에 현우 역시 화가 났고 면전에 대고 자신을 비하하는 사장을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어 열심히 떠드는 그를 뒤로 한 채 사장실을 나왔다. 그러자 사장실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태현이 보였다.

 

 “...잘 안 됐어...?”

 “응.. 미안하다.”

 “미안하긴....... 에이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잘 했어.”

 

 태현이 현우의 팔을 잡고 살살 흔들며 얘기했다. 그래도 니가 있어 다행이다. 그런 자식한텐 화내는 게 다 아깝다며 태현은 계속 현우의 편에서 쫑알거렸다. 잔뜩 굳었던 현우의 표정이 조금씩 풀려 갔다.

 

 

 

 

 현우는 바로 다음 날부터 레스토랑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현도 그 날 사직서를 냈는데 사장의 반응이 판이하게 달랐다. 급여를 인상해준다는 말까지 했지만 태현은 어제 현우가 당한 것도 있고 해서 도도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후임도 없이 그만 두는 건 또 예의가 아니라 태현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후임이 구해질 때까지만 나오기로 했다.

 

 또 그 다음 날, 돌아온 월요일. 공연이 없으니 연습할 일도 없어졌다. 네 남자는 갑자기 찾아온 한가한 휴일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태현에겐 곧 할 일이 생겼다. 태현은 밴드 카톡방을 냅두고 현우 없이 세 사람만의 카톡방을 하나 만들었다.

 

2  오후 1:11 [얘들아 우리들이할일이생겼어]

 

 

 

 

 

 

 

 

 

 

 현우는 쇼리에겐 밥을 챙겨줬으면서 정작 자신은 안 먹고 축 늘어져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건반을 두드리기도 하다가 티비를 켜고 누워 있기도 하다가 태현과 별 내용 없는 카톡을 하거나.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해가 중천을 넘어 서서히 지고 있을 때였다.

 삥뽕. 현우네 초인종이 울렸다. 현우와 쇼리 모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인터폰으로 확인해보니 재흥이었다.

 

 ‘얘가 연락도 없이 웬일이래.’

 

 현우는 터덜터덜 걸음으로 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팍파박 폭죽이 터졌다. 현우는 폭죽 종이를 그대로 맞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서프라이즈~”

 “키키 완전 놀랬네 김현우. 턱 빠지겠다.”

 

 인터폰으로 볼 땐 가람은 보이지 않았었는데. 어디 숨어있었나 보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ㅁ.. 뭐야 너네.”

 “뭐긴. 사랑하는 친구의 생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잖은가!”

 

 재흥이 돌연 사극 톤으로 말했다. 현우는 그 제서야 헤헤 바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생일은 내일이지만 두 친구는 일을 가야하니 대신 오늘 와준 것이었다.

 

 “자, 여기. 우리가 선물도 준비했어.”

 

 가람이 현관문으로 가려 안 보이던 곳에서 커다란 상자를 끌고 나왔다.

 

 “김치 냉장고?! 야 이걸 뭐하러 사. 니네 돈이 어딨다고. 그리고 나 이거 필요 없어.”

 

 그러자 이번엔 재흥과 가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재흥은 현우에게 풀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현우가 박스 테이프를 뜯고 상자를 여니 그 안에는

 

 “해피버스데이 김현우!”

 

 태현이 케익을 들고 앉아 있었다. 헐. 현우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당장이라도 침이 흐를 듯 입을 헤 벌리며 웃었다. 어서 태현을 안아주고 싶어 고맙다며 케익을 받아 재흥에게 건네고 태현을 일으키려 손을 잡았다.

 

 “아.. 나 다리 저려...... 못 일어나겠어.......”

 

 태현은 꽤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 진짜 저 애자 자식. 온전하게 서 있던 남자가 복도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웃어댔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지 태현도 따라 웃었다. 태현은 결국 가람이 상자를 찢어주어 다리를 쭉 폈다가 저린 게 없어지고 나서야 일어났다.

 

 갖고 온 건 케익과 술, 그리고 태현이 전부면서 재흥과 가람은 빨리 먹을 걸 쏘라며 현우를 닦달했다. 구두쇠 짠돌이 김현우지만 오늘은 기분이라며 치킨과 피자를 시켰고 네 남자는 한 상 가득 음식을 놓고 조촐한 파티를 시작했다. 술만 탄산음료로 바꾼다면 완벽한 초등학생의 생일상이었다.

 

 “하여튼 어디서 본 건 있어갖고 얘를 선물로 주고 그러냐?”

 “뭐? 김현우, 그래서 지금 싫다는 거야?”

 “아, 아니 애태!! 무슨 말이야! 난 그냥 얘네가 어이없어서...!”

 

 하여간 김태현 앞이라면 끔뻑 죽는 김현우다. 닭살 돋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바보스러운 이 커플을 보며 웃다가 재흥과 가람은 배꼽이 빠질 뻔 했다.

 저녁은 금세 찾아왔다. 취하진 않았지만 한 잔씩 걸친 채라 다들 좀 느슨해져 있었다. 그 상태로 티비를 보고 있다가 문득 재흥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공연은 계속 했으면 좋았을 텐데.”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에게 음악은 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현우는 이렇게 된 게 다 자기 잘못 같아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

 “에이, 니가 뭐가 미안해. 그리고 그 사장 원래 너랑 안 맞긴 했어. 모르긴 몰라도 음악 계속 할 거면 나나 흥베가 먼저 그만 두자고 말했을 걸?”

 

 가람의 말에 재흥이 고개를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고 현우는 눈을 내리 깔고 미소지었다.

 

 “아 그러면 우리 다아아! 나와서 음악만 하면 되겠네에. 밴드! 오예!”

 

 아, 말을 수정해야겠다. 술이 약한 태현은 좀 취해있는 상태였다. 현우는 그게 또 귀여워 태현의 곱슬머리를 헤집었고 가람과 재흥은 진짜 그럴까? 라는 말을 계속 주고받았다. 농담처럼 말하는 두 사람에, 태현은 입을 내밀며 ‘진짠데......’라고 생각했다.

 

 “근데 애태... 오늘 생일 선물로 너를 준 거면....... 오늘 우리 자는 ㄱ.......”

 “뭐?! 야 너는 그 생각밖에 안 하냐?!”

 

 태현은 술이 확 깨는 듯 했다.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던 현우를 퍽 밀어내고 쿠션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현우는 또 그것도 좋다고 웃고 있었지만. 김현우 이제 아닌가 했는데 아직도 변태 맞네. 재흥은 친구인 것 같기도 연인인 것 같기도 한 두 사람을 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2013.01.18 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