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엑소/HSH

[다각/클첸/루민] 홈스윗홈 27.한다면 합니다

Neese 2015. 6. 30. 11:54



W.유쫑




27.한다면 합니다





베란다 창을 열면 선선한 아침 공기가 들어왔다. 공기는 높고 푸른 하늘처럼 맑았다. 대청소를 해야겠다, 아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 계기는 그걸로 충분했다. 민석은 푸른 하늘을 보며 어느 날씨에나 잘 어울리는 아메리카노로로 입술을 축였다.








“세상에……. 우리 집 어디 가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느긋이 계단을 내려온 종대는 거실에 펼쳐진 진풍경에 엉뚱한 질문을 했다. 종대도 놀라서 말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걸 충분히 헤아릴 수 없어 타오는 짜증을 내듯 말했다.


“종따! 집이 어떠케 가아. 다리가 업자나.”


부엌에 짝다리를 짚고 서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백현이 타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돌렸다.


“이 집 팔렸대……. 우리 방 빼야 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김수호 씨가 이 집 주인인데.”

“형, 신작이 아마 적자가 났다죠?”

“어, 그래……. 푸흣.”


우물우물 빵을 씹고 있던 찬열이 백현의 장단에 맞췄다. 그러나 준면이 포커페이스도 안 됐을 뿐만 아니라 끝에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아닌 낮중의 사기 행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 준면이 김수호라는 사실은 이 집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었다. 그 날 서점에 갔던 타오, 세훈, 이씽, 종대 중 그 누구도 발설한 이는 없었지만 타오와 이씽이 틈만 나면 김수호 책을 붙잡고 있던 게 눈치 빠른 백현에게 힌트를 준 것이었다. 둘에게 잘못이 있다면 책을 통해 한국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려고 했다는 것 정도.

하루는 이씽이 책을 읽다 소파에서 잠들었다. 그 때 함께 있던 백현은 이 책을 왜 이렇게 열심히 보는 거냐며 책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커버 앞뒤를 보다가 표지를 넘겼고 그러면 커버의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가 보였다. 몇 줄 되지도 않는 작가 소개를 1분도 넘게 들여다보던 백현은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준면의 방문을 덜컥 열고 외쳤다. 형이 김수호죠? 라고. 그리고 준면은 지금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런 거짓말에 서툴렀다.

찬열은 사기행각이 아쉽게 막을 내리자 김수호가 미스테리인 게 미스테리가 아니라 이 형이 김수호인 게 미스테리라며 혀를 찼다. 준면의 목 잡고 누르는 응징이 바로 이어진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찬열이 자신의 앞자리에 앉는 백현에게 살려달라고 했지만 백현은 네가 맞을 짓을 했다며 웃을 뿐이었다.

셋이 그러거나 말거나 종대는 아직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거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티 테이블과 소파 두 채는 세로로 길게 세워져 타오의 방문 옆 벽에 나란히 서 있었고, 현관 중문 앞에는 커다란 종이 상자 두 채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휑한 거실 한가운데엔 걸레질을 하며 이마의 땀을 훔치는 민석이 있었다. 식구들의 이야기를 건너듣고 있던 민석은 종대의 시선을 느끼곤 허리를 펴 종대를 보았다. 그리고 땀을 닦아내며 환하게 웃었다.


“종대야, 이따 네 방도 청소할 거니까 비워 놔. 버릴 건 오른쪽 상자, 기부할 건 왼쪽 상자야.”

“전 어차피 스케줄 있어서 나가봐야 돼요. 근데 형, 그럼 방 청소도 다 하려구요……?”

“응- 집 다 할 거다-”


고달픈 가사 노동을 앞두고 명랑해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민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 종대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루한이 멍하니 서 있는 종대에게 커피를 내밀자 종대는 고맙다며 간신히 입을 다물었다.


“넌 민석 청소하는 거 처음 보나?”

“네. 이런 적이 또 있었어요!?”


민석의 대청소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봄이나 가을, 먼지 한 톨마저도 갖고 사라질 듯한 화창한 날이면 민석은 으레 대청소를 하곤 했다. 이 모습이 처음인 건 종대뿐만 아니라 타오도 마찬가지였지만 타오는 불과 10분 전 이 과정을 다 거치고 난 후였다. 그리고 또 몇 분 후 세훈과 종인이 방에서 나오며 놀랐고, 세훈이 깨우러 가서 데리고 내려온 이씽도 왕방울 눈이 되었다.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한 루한이라 이번엔 종대가 이씽에게 민석의 대청소에 대해 전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이씽은 입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선언했다.


“저두, 청소 가취 할래요.”


켁켁. 놀란 것은 민석이 아니라 세훈이었다. 그것도 이씽이 말한 것보다 한 박자 늦게 주스를 뿜어서 식구들은 ‘이 녀석 뭐지?’하는 눈빛으로 세훈을 보며 비웃었다. 민망함에 입술을 꾹 닫고 웃는 세훈에게 루한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연습 안 가게요?”


세훈이 옷에 묻은 주스를 닦으며 물었다.


“오눌은 중요한 고 아니자나. 단장님한테눈 남은 조 드러간다구 전해조.”


종인과 같은 조로 편성이 되어 몇 주씩 고생하던 공연은 어제 막 끝난 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집합 시간도 세 시간 미뤄지고 연습보단 새로운 공연의 조 편성을 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종인은 아직까지 피로가 덜 풀렸는데 그 몸에 차라리 동아리를 나가 농담 따먹기나 하는 게 낫지 육체노동을 자처하는 이씽 때문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리하여 민석 사부와 이씽 제자의 대청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일을 민석과 함께 하던 루한은 웬일인지 청소는 함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석이 거실을 번쩍번쩍하게 쓸고 닦고 나니 소파 등의 가구는 제가 옮기겠다며 나섰다. 부쩍 팔 근육을 기르고 있는 찬열이 희생양으로 간택되어 루한을 도왔다.

식구들은 민석의 반 명령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 보이기 민망한 물건들은 서랍 속 깊이 쑤셔 박았고 필요 없는 물건들과 버릴 물건들은 갖고 나왔다. 2층의 백현과 찬열은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셰어하우스에 들어올 땐 짐 상자 몇 개만 들고 들어왔었는데 여섯 달 동안 뭘 하며 짐이 늘어난 건지 갖고 내려온 물건들이 품 한가득인 건 종대도 피차 마찬가지였다. 현관에 있던 상자는 버리는 쪽만 벌써 3개가 되어 있었다.

방 청소의 과정은 방주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는 일은 똑같았다. 일단 이불을 갖고 나와 테라스에 널어 털었고, 청소기를 돌리고 침대 밑과 방구석구석까지 쓸고 닦았다. 방주인들이 치운다고는 치웠는데 여전히 남아 있는 쓰레기며 잡동사니에 민석과 이씽은 식구들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야 했다.

저녁 무렵 두 사람은 2층까지 청소를 모두 마쳤다. 라디오 스케줄을 갔던 종대도, 동아리를 갔던 종인과 세훈도 돌아왔고, 그들과 교대하듯 찬열과 백현이 데이트를 나갔다. 그런데 2층에서 내려온 건 이씽 하나였다.


“민석은?”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아 제 옆 민석의 자리까지 확보해뒀던 루한이 이씽에게 물었다.


“횽은 다락방, 도 하신대요. 몬조 모그래요.”


루한은 이씽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열심히도 맡아뒀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한이 쿵쿵쿵쿵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울렸고 식구들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루한이 사라진 계단을 흘끗거렸다. 빈자리를 두고 루한과 티격태격하다가 만족스럽게 자리에 앉는 타오와 루한이 왜 저러는지 눈치 채 버려 한숨을 쉬는 준면만 빼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종대는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내려가다가 쿵쿵쿵 올라오고 있는 루한을 맞닥뜨렸다. 형 어디 가요? 종대가 물었으나 루한은 민석이 어쩌구 저쩌구 중얼중얼거리며 종대를 지나쳐 계단을 계속 오를 뿐이었다. 뿌 내민 입술로 궁금증을 표출하고 있던 종대는 곧바로 들려오는 루한의 성난 목소리에 살금살금 계단을 올랐다.


“밥은 먹어야지! 밥을 먹어야 청소할 힘도 날 거 아니야.”

“여기만 다 하구 먹을 거라니까. 여기만 하면 끝이야.”


계단 코너에 숨어서 위를 올려다보는 터라 루한의 등에 가려 민석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루한의 것과 다르게 부드러웠고 상냥했다.


“응? 그니까 속상해 하지 마-”


루한을 달래주려는 민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종대는 오늘만은 두 사람의 성격이 반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같이 해.”


입을 다물고 있던 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던 루한이 조그맣게 말하곤 민석을 살짝 밀어 다락방 안으로 들어갔다. 뭐어? 민석의 헛웃음이 공중에 흩어졌다. 아마 루한이 제 고집을 꺾지 못했듯, 자신도 루한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느낀 것이리라. 종대는 알콩달콩 사랑싸움을 하는 둘을 기다려줄 생각은 당연히 없었기에 잠복근무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갔다.


“루한이 봤어?”


준면이 방긋방긋 웃으며 홀로 내려오는 종대에게 물었다. 종대는 이따 민석과 함께 먹는다고 전하며 홈바에 앉은 준면 옆으로 갔다. 오늘 식탁은 이씽과 동생들인 세훈, 종인, 타오가 차지해 오랜만에 경로 우대가 아니었다. 밀려난 준면과 종대가 홈바 스툴에 앉았지만 둘 다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고, 무엇보다 둘이서 안주 삼아 할 얘기가 있었기에 더 나았다.


“말도 마요. 제가 쫓아가서 보고 왔는데, 어유, 그냥 장난 아니더라구요.”


종대는 혀만 내두르는 게 아니라 젓가락가지 내두르며 말했다. 준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잔등을 찌푸리며 웃었다.




가족들은 청소를 마치고 금의환향하는 민석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뒤따라 내려온 루한이 청소도구를 내려놓고 마치 제가 박수를 받는 듯 뿌듯한 눈길로 민석을 보며 어깨동무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민석은 땀을 많이 흘렸다며 그 손을 쳐내고 밥을 먹기 전에 먼저 씻으러 갔다. 찝찝한 상태에서 밥을 먹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와, 진짜 누가 말리냐, 민석이 형을.”


1차 저녁상을 치우고 있던 종대가 민석의 깔끔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불시에 들어가도 두 사람의 방이 항상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빈 그릇을 갖다 넣고 있는 개수대만 보더라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까.


“민석은 정말 대단할 때가 있어.”


배가 고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던 루한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욕실 쪽을 보고 있었다.


“왜, 넌 민석이가 항상 대단한 거 아니었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 같고.”


준면이 국을 데우려고 가스 불을 켜며 말하니 루한은 가스가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 조용히 하라고 쉬쉬거렸다. 그래봤자 거실에서 TV를 보며 투닥투닥거리고 있는 종인, 타오, 세훈이 들었을 것 같진 않았지만. 종대는 루한을 따라 거실을 스윽 훑고 나서 말을 이었다.


“루한이 형, 근데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형한텐 항상 대단한 거 아니었어요?”


루한이 방금 전 준면의 말을 잊은 듯 ‘뭐가?’라고 되물으니 종대는 손가락으로 욕실 쪽을 가리키며 민석이 형이라고 크게 입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준면은 이 와중에도 어차피 애들 못 듣는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아니지. 항상 좋아하는 건 맞지만.”


루한은 준면의 말을 모르는 척하며 답했다. 종대는 정말 사랑스러운 것을 떠올리는 사람의 표정이 지금 루한의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데자뷰를 느꼈다. 언젠가 꼭 이런 적이 있었다. 루한이 민석을 좋아하는 티를 숨 쉬는 것마냥 자연스럽게 표현한 적이. 그리고 그런 적은 식구들에게 연애 사실을 숨겨야 하면서도 한두 번 있던 게 아니다. 자신과 준면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탄로날 일은 없겠지만 이런 루한은 좀 위험하다고 종대는 생각했다. 또 자신이 아무리 커플이라고 해도 크리스와 떨어져 있는 시점에서 이런 염장은 너그럽게 받아줄 수가 없어서, 소름 돋는 팔을 감싸 안으며 눈을 흘겼다. 그러면 루한은 ‘특별히 대단할 때가 있어.’, 참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예전에 민석이가 다이어트를 했었어. 전까진 볼이 이렇게 통통해서, 내가 빠오즈라고 불렀어.”

“지금도 빠오즈라고 하잖아요.”


루한이 양 볼을 부풀렸고 종대가 대꾸했다.


“맞아. 근데 민석은 계속 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떡해, 귀여운데. 어쨌든 다이어트를 했는데 정말 너무 열심히 많이 했어. 언제는 내가 민석 회사로 데리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나오면서 쓰러진 거야. 그 때 내가 엄청 화냈어. 그렇게 화낸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까도 그렇게 화를 냈고 민석이 형은 더 풀어주려고 했던 거구나. 그 땐 정말 피골이 상접했었다는 준면의 말을 흘려들으며 종대는 생각했다. 하기야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이젠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인데 애인이 건강 문제로 속을 썩이면 그것보다 속상할 일이 없을 것이다. 크리스도 저도 서로가 아플 때면 함께 아파하며 힘들어 했었으니까.

종대는 루한에게 애교를 부려 민석이 다 씻고 나오기 전 커피 한 잔을 받아냈다. 그리고 덤으로 받은 준면까지, 둘은 밥을 먹는 커플 옆에 함께 앉아 있었다. 다이어트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맛있게 밥을 먹는 민석의 모습을 보는 루한이 오늘따라 더 많이 흐뭇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대였다.




백현과 찬열은 생각보다 이른 9시 정도에 집에 돌아왔다. 그래서 졸음 때문에 고개를 앞뒤로 끄덕끄덕이다가도 TV를 보며 웃곤 하는 민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라리 방에 들어가서 자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소파 자리를 탐내는 백현이 말했다.


“어때 민석아, 그럴까?”


백현의 목소리에 잠시 눈이 원래 크기를 찾은 민석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루한이 아기 달래듯 물었다. 그래도 그 눈엔 아직도 졸음이 넘치고 있었다. 루한이 민석에게 다정한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식구들은 그 때까지만 해도 별 다른 반응 없이 TV에 고정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까무러칠 일은 그 다음이었다.


“응. 나 피곤해, 하나-”


하나, 라니. 루한의 한 자만 길게 늘여 부른 것인가. 게다가 민석은 루한에게 팔짱을 끼고 얼굴을 루한의 어깨 깊이 기대기까지 했다. 루한은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지으며 광대와 앞니가 튀어나올 것처럼 활짝 웃었다. 아마 민석이 졸려하지만 않았더라면 호탕하게 웃어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큰 소리를 내어 웃지 않아도 식구들은 이미 혼이 쏙 빠진 채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냉동 빠오즈, 냉동 만두 민석의 입에서 나온 ‘하나’ 그 소리를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민석이 형 세제 잘못 마신 거 아냐……?”


찬열이 루한에게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민석을 흘끗거렸다. 아직도 이 상황이 낯선 식구들은 찬열의 말에 조용히 동의했다. 오직 종대와 준면만이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보며 웃음을 감출 뿐이었다. 백현은 자리가 생겨 얼른 앉으며 좋아했지만 식구들이 다시 TV에 집중하기 시작할 즈음 손톱을 깨물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










귀가했을 때 처음 보고 감탄하긴 했으나 방은 생각보다도 더 깨끗했다. 종대는 먼지 한 톨 찾아볼 수 없는 방이 신기해 구석구석 둘러보며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눌렀다.


“우와, 진짜 깨끗하다…….”

-뭐라고?

“아! 아, 형 받았어요?”


신호음이 끊긴 줄도 몰랐던지라 갑작스런 크리스의 목소리에 종대는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아니, 민석이 형이 오늘 갑자기 대청소를 했거든요. 종대는 단순히 날씨가 좋아서 대청소를 시작하고 악착같이 끝낸 민석의 이야기를 크리스에게 들려주었다.


“와! 이불도 완전 푹신푹신하다. 진짜 좋아요!”


방을 다 둘러본 종대는 폴짝 뛰어 침대에 누웠다. 무슨 짓을 한 건지 이불도 새 것처럼 폭신폭신해서 눕는 순간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종대가 감탄 또 감탄하자 크리스는 루한, 민석과는 언젠가 얼굴도 보고 앞으로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끔 청소 좀 부탁하게.


크리스의 말도 안 되는 이유에 종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멈추고 이번엔 민석이 다이어트를 했던 것, 그러다 쓰러질 뻔 했던 것, 심지가 굳긴 하지만 그래도 건강은 해치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우리도 건강하자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크리스가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종대를 불렀다.


-이불 푹신푹신한데……, 형이 지금 갈까?

“네에?! 아하하! 아- 아 뭐야 진짜. 진짜 웃겨 우리 형.”


반 년 동안 잘 버텼으면서 얼굴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실까. 종대는 크리스가 말을 던져놓고도 무안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확 끌리는 말이었다. 푹신푹신한 이불에서 함께 뒹굴고 함께 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크리스는 종대가 오라고 해도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걸 알고 있는 종대도 감히 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이 방법은 민석에게 직접 전수받아 다음 달 크리스의 생일에 다시 만나면 써먹을 거라고, 종대는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다짐했다.










-
140123